자동차 시동 걸어주는 주막집 곰
작성일 14-03-11 23:06
본문
이 이야기는 6.25사변 전인 1940년대 말의 실화이다.
영동고속도로가 건설되기 전이라 서울과 속초, 양양, 강릉등지를 오가던 자동차들은 강원도 대관령의 횡계 고개를 지나는
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. 이 고개에는 40대 중반의 한 과부가 운영하는 주막이 있었는데 고개를 넘나들던 트럭과
버스의 운전기사들이나 승객들은 이 주막에서 잠시 쉬어 가기도 하고, 점심때가 되면 밥을 먹고, 해가 지면 하룻밤 자고 가기도
하였다.
겨울철 대관령의 추위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 역시 살을 에는 듯 했다. 게다가 부동액이 나오기 이전이라 이곳을 지나다가
하룻밤을 지내는 기사들은 자기 전에 반드시 엔진 속의 냉각수를 다 뽑아내야 그 다음날 엔진이 얼어 붙는 것을 막을 수
있었다.
새벽이 되면 주모는 큰 가마솥에다 물을 따끈하게 데워 엔진 냉각수용으로 준비 해
놓는다. 그러면 운전기사 조수가 나와 라디에이터에 더운물을 부어 시동 걸 준비를 한다. 그동안 주모는 산에서 잡은
산토끼와 꿩 고기, 채소를 넣어 걸직하게 해장국을 끓여 막걸리 한 사발과 함께 내온다. 물론 공자로 말이다. 이
정도만해도 고마운데 시동까지 걸어주었다.
당시의 자동차들은 자동시동기가 거의 달려 있지 않아 "ㄱ" 자형으로 두 번 구부러진
긴 쇠 막대를 엔진 앞에 끼워 대여섯 바퀴 돌려야만 시동이 걸렸다. 여름에는 더운 날씨 때문에 엔진 오일이 묽어
돌리기가 쉬지만 겨울에는 추위에 엔진오일이 얼어버려 쇠 막대 돌리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. 더욱이 추운 겨울에 손이
쩍쩍 달라 붙는 쇠막대 돌리기란 고역이 아닐 수 없었다. 그래서 몸 약한 운전기사는 시동 한 번 걸고 나면 힘이 빠져 주저앉기가
예사였다.
60년대 이전 옛날 버스나 트럭을 운전할 때 건장한 젊은이들을 조수로 대동하는
것도 바로 힘든 시동 걸기와 정비 때문이었다. 이런 사정을 잘알고 있는 주모는 운전기사와 조수가 밥상을 물릴 때쯤이면
부리나케 집 뒤꼍으로 달려가 우리에 가두어 놓은 큰 곰을 끌고 나와 엔진에 꽂혀 있는 쇠 막대 앞에 세운다. 그러면 곰은 그 큰
앞발을 들어 철썩철썩 두어 번 치고는 여느 때처럼 한 손으로 시동막대를 잡자마자 장난감 다루듯이 몇 바퀴를 돌린다. 부르릉
하고 시동이 걸리면 좋다구나 펄쩍펄쩍 뛰고는 제 우리로 어슬렁어슬렁 들어간다. 주모는 이 곰이 새끼일 때 어미를 잃고
방황하는 것을 발견하고 데려다 키우면서 시동막대 돌리는 것을 가르쳐 운전기사들을 도왔다는 것이다. 이러니 횡계 고개의
주막 아줌마의 인기는 최고일 수밖에 없었다.
그 후 불행하게도 6.25사변중 북한의 인민군이 이 영특한 곰을 사살해 버렸다고 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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